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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전국흙집짓기운동본부 이시화 교육원장
‘흙집’에서
‘정착의 시스템’으로,
농촌 2막을 설계하다
주택·농막·체류형 쉼터를 하나로 묶는 ‘농촌쉼터품앗이협동조합’
흙집은 한때 귀농·귀촌의 로망이었다. 황토집은 건강과 자연, 새 삶의 상징처럼 소비됐고, 현장에는 열기가 몰렸다. 전국흙집
짓기운동본부에서 마을과 교육을 함께 설계해온 이시화 교육원장이 말하는 흙집은 유행을 넘어선다. 겉으로는 집을 짓는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인생 2막을 어디에, 어떻게 ‘정착’시키느냐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외관상으론 흙집 교육처럼 보이지만, 더 중요한 건 인생 후반기를 자기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함께 나누는 자리다.” 이 원장은 흙집을 삶을 다시 설계하는 도구로 정의했다.
공동체에서 시작된 실험,
흙집이 중심이 되다
출발점은 흙집이 아니라 공동체 구상이었다. 명상과 공동체가 결합된 마을 모델을 상상한 사람들이 뜻을 모아 자금을 마련하고 공간을 만들면서 ‘함께 살 수 있는 방식’을 실제로 구현해보려는 실험이 시작됐다. 그런데 흐름은 예상보다 빨리 흙집으로 쏠렸다. 귀농·귀촌 붐이 정점에 가까웠던 시기, 흙집은 시대의 욕망과 겹치며 강력한 키워드가 됐고, 마을에는 약 40채 규모의 흙집이 들어서면서 관심이 한꺼번에 집중됐다. 지금은 각 주택이 개별적으로 운영되지만, 시작은 어디까지나 공동체를 먼저 상상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옮기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흙집 마을은 ‘집’보다 ‘삶의 형식’을 실험했던 현장에 가까웠다.
유행 이후, ‘대중의 열기’에서
‘선택의 영역’으로
흙집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관심을 두는 방식이 달라진 것으로 해석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수요가 정점에 가까웠지만, 귀농·귀촌을 둘러싼 기대감이 현실과 충돌하면서 시장의 온도가 낮아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인생 2막은 시골’이라는 상상으로 움직이던 시기를 지나, 의료·생활 인프라 같은 조건이 다시 선택의 기준을 바꿔놓았다. 건강을 이유로 흙을 찾는 흐름 또한 ‘도시에서 부분적으로 소비되는 방식’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흙집은 ‘대중적 유행’에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선택지’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집을 짓는 교육,
그러나 핵심은 정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이시화 원장이 맡아온 중심축은 교육이다. 운동본부는 여러 법인과 조직으로 분업화돼 운영되고, 그중에서도 교육 사업이 ‘정착의 기술’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통로 역할을 해왔다. 교육은 4주 과정으로 이론과 실습이 함께 진행되며, 완성형 주택을 바로 올리기보다는 이동식 황토방처럼 작은 규모를 직접 지어보는 방식이지만, 원리 자체는 동일하다는 점을 반복해 강조한다. 중요한 건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의 축적이고,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내가 내 집을 지을 수 있겠다’는 감각이 몸에 남는 법이다. 수료 이후 이를 전문직업으로 연결해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많은 이들에게는 ‘자기 집을 직접 짓는 준비’가 목적이 되며, 최근에는 은퇴 이후 새로운 직업으로 연결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목수·시공 역량을 체계화하는 교육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는 흐름이 함께 읽힌다.
‘품앗이·두레’를 오늘의 운영 방식으로, 협동조합의 재구성
정착이 어려운 이유는 집을 짓는 일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농촌에 내려가 생활 기반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반복되면 몇 년 안에 도시로 되돌아오는 사례가 생기고, 그 반복이 결국 ‘혼자 버티는 정착’의 한계를 드러내며 협동조합 구상으로 이어졌다. 준비 중인 ‘농촌 쉼터 품앗이 협동조합’은 주택·농막·체류형 쉼터 등 농촌 이주의 핵심 관심사를 하나의 틀로 묶고, 전통의 품앗이·두레 문화를 현대의 시스템으로 옮기려는 시도다. 수료생이 5천여 명에 이르고 유효 네트워크가 약 8,500명 수준이라는 설명 속에서, 인가 이후 본격적인 조합원 모집과 운영이 시작될 것이라는 계획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규정의 벽과 돌파구,
‘농촌 체류 쉼터’가 열어준 틈
흙집 흐름을 바꾼 가장 큰 변수로 건축 규정이 꼽힌다. 내진·단열 기준 등 현행 규정이 전통 방식의 흙집을 그대로 구현하기 어렵게 만들면서 시장이 빠르게 위축됐고, 그 변화는 단순한 유행의 소멸이 아니라 ‘제도와 현실의 충돌’에 가까웠다. 이 과정에서 주목한 돌파구가 ‘농촌 체류 쉼터’ 제도다. 가설 건축물로 분류되는 방식은 적용 규정이 달라, 흙집 특유의 감각을 구현할 수 있는 현실적 여지가 생긴다. “이 제도가 열리면서 다시 해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이시화 원장은 제도 변화가 현장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반겼다.
흙집의 다음 장,
집이 아니라 정착의 구조를 세우는 일
한때 흙집은 그 자체로 상징이었지만, 유행이 지나간 자리에서 남는 과제는 훨씬 구체적이다. 집을 짓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하고, 사람이 농촌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교육과 네트워크, 협동조합과 제도 활용이 하나의 흐름으로 맞물려 작동해야 한다는 관점이 지금의 결론에 가깝다. 귀농·귀촌의 열기는 이전 같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질문은 더 또렷해졌다. 누가 더 멀리 내려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삶이 지속될 수 있느냐의 문제다. 흙집의 다음 단계는 흙으로 집을 짓는 일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이 삶을 다시 짓도록 돕는 운영의 틀을 세우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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